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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값이 족히 이십만원은 되었을텐데, 호기롭게 자신이 계산하겠다고 한 P오빠의 지갑은 괜찮은걸까. 오지랖 넓게 잘 알지 못하는 그의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고 있는 내가 참 바보 같이 느껴졌다. 아마도 한층 나달나달해진 내 지갑 때문인 것도 같았다. 난 고기 따위 별로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오랫만에 만난 양념갈비는 왜 그리 입에 맞던지. 앞에 앉은 S가 탄고기라며 멀쩡해 보이는 갈빗대를 개 줄 모양으로 다 쓴 쟁반 위에 버렸을 때 나는 기꺼이 그걸 들고 게걸스럽게 물어뜯고 싶었다. 나름 소셜 포지션과 이미지 관리가 있는지라 그러고 싶은 마음은 억눌러야 했다. 그렇게 눌러 붙어 탄 양념갈비는 맛있단 말이다, S양아.
실컷 먹고 약간 양이 모자른 상태에서 테이블 마다 고기가 2인분씩 추가되어 나왔다. 양념갈비는 달달한 게 맛있기는 한데 그런 달달한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한번에 많이 못 먹는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처음엔 입에 잘 맞기는 하지만 금방 질려버린달까. 그러니 모두 배부르게 먹고 나니 아직 굽지 않은 양념갈비가 도합 3인분쯤 그대로 접시에 남아 있게 되었다. 어쩌지 아깝다를 연발하던 우리들은 남은 음식은 싸가면 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눠가지네 밀어주네 하다가, 나눠가지긴 당연히 누군가가 혼자 가져가야 되지 않겠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실컷 먹고서도 어쩐일인지 나는 양념갈비를 탐하고 있었다. 한편 자취생인 E도 탐식의 눈빛을 빛내고 있었으니, 그녀는 자기는 자취생이므로 자신이 가져가야 마땅하다고 했지만 과연 양념갈비는 자취생만의 아이템이냐? 그건 또 아니거든. 그래서 우리는 이쯤에서 양념갈비를 걸고 게임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정해진 배틀은 바로 '쪽팔려' 게임이었다. 본래 이 게임은 사람이 많은 술집에서 서로 더 쪽팔린 '짓'을 해서 승자를 가리는 게임이지만 영리한 막내 J가 그 게임은 승자를 가리는 기준이 주관적일 수 있으니-말하자면 어느 것이 더 쪽팔린 '짓'인지 가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설령 옆테이블에 앉은 꽃미남의 번호를 따내는 것이 그 꽃미남 앞에서 엉덩이로 이름을 쓰는 일에 비해 더 쪽팔린 짓이냐 하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쪽팔린 '짓'이라는 논리-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쪽팔렸던 순간을 말해서 승자를 가리자 했다. 나는 그것이 아주 합당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딴에 우리들은 '스토리텔링'을 한답시고 모인 자들이 아니던가. 그러하니 누구의 이야기가 가장 쪽팔린 것인지 가려낼 혜안이 있을 것이며 또한 마셔도 마셔도 목 마른, 퍼도 퍼도 샘솟는 '이야기'에 중독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첫 사슬은 맏언니 H가 시작했다. 언니는 언젠가 젊은 시절 호프집에서 탐내던 주석잔을 몰래 훔쳐가지고 나오다가 점원에게 들켰던 이야기를 했다. 써놓고 보니 하나도 웃기지 않지만 그 별 것 아닌 주석잔을 몰래 가지고 나오다 들켜서 같이 있던 선배에게 던지고 도망갔으며 결국 몇년 후 신혼여행에서 주석잔 3종 세트를 사왔다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배꼽을 잡고 쓰러졌다. 뒤이어 이야기는 도벽으로 흐르고 있었다. 거기에 덧붙여 맏형님 L도 중딩 때 친구들과 새우깡 한 박스와 호빵을 기계 채로 훔쳤던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 정도면 정말 범죄수준이 아닌가(?). 우리는 모두 두 눈을 천장으로 치켜뜨고 있었다. 더 쪽팔린 이야기를 생각해 내기 위해. 이야기는 잠시 끊겼지만 다시 시작된 이야기는 한층 더 깊어지고 있었다. 나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쪽팔린 그 순간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동안 '아, '쪽팔리다'는 그 말의 범위는 그야말로 광대하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창피한 짓도, 당황스러운 짓도, 남보기 우스운 짓도, 간혹 애처로운 짓도, 불가항력적 낭패도, 모두 쪽팔릴 수 있었다. 내가 떠올린 것은 사오년 전 생일날 마침 선배의 따님 돌잔치에 갔다가 오랫동안 짝사랑 해오던 M선배가 실수로 던진 바나나껍질에 머리를 맞았던 일이었다. 아무리 다른 일을 생각하려해도 그때만큼 같이 앉아 있던 사람들 앞에서 쪽팔렸던 일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나는 그것을 말했다. 자리에선 일순간 웃음이 터지긴 했지만 그건 어딘지 좀 슬픈 구석이 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이 게임이 시작될 때부터 난 답을 알고 있었다. 양념갈비를 얻기 위해서는 거의 다 커서 '똥, 오줌'을 가리지 못했다면 압권인 것이다. '야, 약하다, 약해. 이거 똥, 오줌 정도는 나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취생 E가 똥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줌 이야기도 물론 했다. 오줌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훈훈한 면이 있어서 모두의 감탄을 자아냈는데, 그녀는 10살이 넘어서까지 대소변을 잘 못 가렸다고 한다. 한번은 수업중에 오줌이 마려웠지만 화장실에 가겠다는 소리를 하지 못해서 의자 위에서 쉬를 해버렸다는 것이다. 자기는 창피해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때마침 선생이 발견하고 다가오고 있었는데 옆에 앉은 짝꿍 남자아이가-이름은 뭐 '영수' 정도 됐었던 것 같다고 한다-갖고 있던 결명자차를 바닥에 부으면서 '얘는 오줌을 싸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 결명자차+오줌을 닦아내 주었다는 이야기 였다. 이건 E의 입장에서는 뭐 좀 쪽팔릴 수도 있겠지만 '영수'의 나이답지 않은 순발력과 자상함에 몹시도 감동적인 스토리로 급부상하였다. 이어서 나온 똥 이야기도 그 무렵의 추억이었다. 초딩 E는 그 날 멜빵바지를 입고 있었다. 요새처럼 매우 추운 날이었다고 한다. 하교길이었는데 느닷없이 변의를 느낀 E는 서둘러 길을 갔어야 했는데 어쩐 일인지 지금의 자신은 이해할 수 없는 여유를 부리며 갔다고 한다. 그러다가는 참지 못하고 멜빵바지에 일을 봐버렸다고 한다. 보통의 아이라면 얼른 집으로 달려가거나 했을텐데 E의 기억대로라면 자기는 아파트 단지를 한바퀴 돌고 경비실에 까지 놀러갔었다고 한다. 다 큰 E는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테이블에선 추측성 답변이 튀어나왔다. 혹시 똥 말리려고? 아니면 냄새 날아가게? 엄마한테 혼날까봐 그랬나? 그러나 그녀의 결론은 영 다른 것이었다. 그날이 몹시도 추웠는데 그것이 나오면서 따뜻해졌다는 어이없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E는 그냥 평범한 스물여섯의 처자다. 그래, 뭐 이런 유년시절을 듣고 나니 새삼 그녀가 평범하게 보이지 않고 어딘지 모르게 애정결핍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후의 이야기도 쪽팔리긴 했으나 어딘지 모르게 찝찝하고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가 되었다. 어려서 충치치료를 하러 갔다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누운채로 먹은 음식을 토한 것을 물고 있다가 간호사와 의사가 오늘은 그냥 가라고 했던 일로 지금까지 치과를 못가고 있다는 이야기, 좋아하는 태권도 사범에게 사천원짜리 커플 목걸이를 건넸다가 온 도장에 소문이 나서 술먹고 진상부린 이야기, 종로에서 술을 진탕먹고 3차쯤 호텔 수영장 비슷한 곳에서 한참 수영한 기억을 갖고 깨어나보니 세종문화회관 분수대 옆에서 노숙인과 나란히 깨어나 물이끼 때문에 녹색으로 변한 흰 티셔츠를 입고 지하철 타고 집에 갔다는 이야기 등. 들을 때는 배꼽을 잡고 쓰러졌는데 그 이면엔 애닮은 그림자가 샴쌍둥이처럼 겹쳐있었다. 쪽팔리다는 것의 본질은 참으로 치명적인 것 같았다. 가끔씩 나는 글쓰는 사람들은 노출증 환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들은 벗겨도 벗겨도 또 껍질을 갖고 있는 양파들이다. 이것이 속살인가 하고 벗겨내면 그 안에 또 다른 속과 껍질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속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벗겨내고 벗으려고 글을 쓴다. 발가벗기.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야기는 회차를 더해 갈수록 무르익고 껍질은 벗겨낼수록 여린 속을 내비친다.오늘 양념갈비 배틀의 승자는 똥과 오줌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E에게 돌아갔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어수선한 선술집에서 장난으로 시작한 게임이었는데 뭐랄까, 나는 우리들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를 새삼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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