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다행이다. 내 슬픔의 촉수가 이렇게 무디어졌다니' 라고 써 있는 글귀를 발견했다.
과연 그러한가. 또 다시 나에겐 글이 남아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슬픔이 다시 내 친구가 되었다.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고, 짧게 비쳐들었던 한낮의 태양이 시간이 지나 저버렸을 뿐이다. 이토록 자연스러운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노력중이다.

아니나 다를까 C선배는 또 길을 잘못 들었다. 차를 태워준다고 했을 때 정중히 거절했어야 했다.
강변북로를 타고 가며 새로 살 자전거에 대해 한참 떠들던 선배는 마포구청쪽에서 빠져야할 진출로를 무시하고 신나게 내부순환로를 타버렸다. 결국 홍제동까지 가서 다시 돌아와야했고 내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만나자고 한 YG는 벌써 40분째 기다리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자동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한달 전 모습 그대로 우리가 자주가던 커피숍에 앉아있었다. 난 며칠전부터 연습해 온 인사말을 하며 밝은 모습을 보이려고 했다. 그리고 늦게된 이유에 대해 떠들어댔다. 웃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피식 웃고는 넘어가버렸다. 자리를 옮겨 저녁을 먹자고 했더니 싫단다, 나가서 공원에 가서 조용히 얘기하자고 해도 싫단다. 몇 번이나 나가자고 해봤지만 거절당했다. 희박한 희망의 기운이 더 굳어지기 시작했다.
내 미련에 못이겨 만나자고 했다. 그 사람의 마음이 조금은 변했기를, 나를 그리워했기를 바라면서 물었다. 나 보고 싶지 않았냐고. 바빴다고 그냥 이일 저일로 바빴다고 했다. 나를 만나며 언제가 제일 행복했냐고 물었다. 그걸 왜 묻냐고 했다. 찡그린 미간은 눈물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냥 내 착각일 수도 있다. 다시 내 손을 잡아달라고 했다.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런 반복이 너무 너무 싫다고 했다. 그에게 친구들이 왜 그 자리에 나가려고 하느냐고 물었단다. 나도 궁금했다. 왜 나온 걸까. 결국 난 그의 답을 듣지는 못했다. 언제나처럼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난 늘 묻고,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다.
축복해주고 헤어질 수 있다면 좋았을까. 난 그럴 자신 없다. 다시 만나서 친구처럼 지내자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당신은 할 수 있겠어? 그게 의미가 있어?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그래서 난 헤어질 때, 우리 세상에 없는 사람들처럼 살자고 했다.

천천히 나아지고 싶다. 이별의 독이 자기연민이란 걸 3주만에 깨달았고, 벌써 2달이 되어간다.
집중력이 떨어져 책이나 기사 읽기가 쉽지 않다. 영화도 못 본지 너무 오래 되었다. 다 늦되지만 감정 정리도 늦나보다. 다만, 기록해 둬야만한다는 의무감으로 또 다시 끄적이기 시작한다.



속시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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